코로나 19로 조선 4대 고궁의 문은 닫히고,
계속되던 야간관람과 야간행사도
잠시 멈춰 있습니다.
못 보니까 더 아쉬운 고궁의 밤,
이제서야 소중함을 느끼게 됩니다.
조만간 다시 만날 거예요.
그때까지 잊지 마시라고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창경궁의
아름다운 밤을 공개합니다.
다시 만나면 더 아껴주세요.
우리 고궁의 밤을.
창경궁
창경궁 昌慶宮 사적 제124호
1418년 왕위에 오른 세종은 아버지 태종을 위해 수강궁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1482년 성종은 세조와 덕종, 예종의 왕비였던 정희왕후, 소혜왕후, 안순왕후, 이 세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해 수강궁을 수리하고 창경궁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렇듯 임금님들의 효심으로 이루어진 창경궁은 창덕궁과 더불어서 정궁의 동쪽에 있는 궁궐이라 해서 '동궐'이라고도 불리며, 창덕궁의 부족한 생활공간을 보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창경원(昌慶苑)으로 격하되는 등 유원지로 전락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1983년부터 본격적으로 복원공사가 진행되어 궁의 이름을 '창경궁'으로 바꾸고, 동물원을 이전하는 등 궁궐의 모습으로 갖추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명정전은 창경궁의 중심 건물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과거시험, 궁중연회 등의 공식적 행사를 치렀던 정전(正殿)이다. 1484년(성종 15)에 창건되어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6년(광해 8)에 재건되었는데, 현존하는 궁궐의 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문정전은 왕의 공식 집무실인 편전(便殿)으로, 동향인 명정전과 달리 남향 건물이다. 정전인 명정전과 등을 돌리고 있는데 이런 특이한 배치구조는 다른 궁궐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편전이지만 왕실의 신주를 모신 혼전(魂殿)으로 쓰인 경우도 있다. 문정전 앞뜰은 영조의 둘째 아들이자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8일만에 세상을 떠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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