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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에 절이고 삭힌 한국 음식

Skin Demo 6 2020. 8. 31. 09:21

인류의 생명은 불로 음식을 익혀 먹으면서 획기적으로 길어졌다. 사자나 하이에나가 먹고 남은 고기를 훔쳐 먹었던 초기 인류는 불을 장악한 후 자신의 몇 배나 되는 큰 덩치의 동물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고기의 부패였다. 부패는 고기의 단백질이나 지방 같은 유기물이 공기 속의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면서 썩은 상태이다. 부패한 고기를 먹고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리기도 했다. 그렇다보니 산업 식품(industrial food)의 생산, 냉동고와 냉장고의 보급이 이루어진 19~20세기 초중반 이전의 요리법은 대부분 부패를 지연시키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멸치젓 (이미지 출처 : UTO Image)

젓갈, 소금에 절여 삭힌 더미

고기를 햇볕과 바람에 말리는 방법은 가장 쉽고 경제적이지만 수분 대부분을 제거해버려 고기의 원래 맛을 잃게 했고, 훈제(smoking)도 부패를 지연시킬 수 있지만, 연기로 인해 생긴 맛이 단점이었다. 고기를 소금에 절이는 방법(salting)은 본래의 맛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소금에 절이는 방법은 고기를 잘게 쪼개서 소금이나 소금물에 절이는 방법(brining)과 고기의 표면에 소금을 바르는 방법(curing)이 있다. 한국의 젓갈은 생선의 고기와 내장을 소금에 절인 음식으로 전자(brining)의 방법으로 만든다.

좌 : 새우젓 우 : 자리젓 (이미지 출처 : UTO Image)


생선을 소금에 절인 음식을 한국어로 ‘젓갈’이라고 부른다. ‘젓’은 절여서 삭혔다는 뜻의 한국어다. ‘갈’은 차곡차곡 쌓아 둔 더미를 이른다. 젓갈은 손질한 생선을 항아리에 한 켜 깔고 그 위에 소금을 뿌리고, 다시 한 켜를 깔고 소금을 뿌리는 방법으로 만든다. 손질한 생선의 근육·내장·생식소 등에 소금을 뿌리면, 고기 속에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가 생긴다. 효소는 생선의 단백질을 분해하여 아미노산으로 만든다. 이런 상태를 한국어로 ‘삭이다’라고 부른다.

2009년, 충청남도 태안반도 바다에서 13세기 초반의 배 세 척이 발굴되었다. 그중 하나의 배에는 말린 홍합, 말린 전복 등과 함께 소금에 절인 전복이 항아리에 담긴 채 나왔다. 아마도 전라남도 강진군의 바다에서 채취한 전복으로 젓갈을 만든 듯하다. 제주도 사람들은 전복의 내장을 ‘게웃’이라 부른다. 게웃젓은 제주도 사람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젓갈이다.

다른 생선에 비해 단백질과 지방의 양이 많은 청어는 19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서해안에서 많이 잡혔다. 조선 시대 사람들은 말린 청어를 굽거나 날로 먹었으나 부유층에서는 청어로 젓갈을 담갔다.

한글로 쓰인 요리책 중에서 가장 오래된 《음식디미방》의 저자인 장계향(1598~1680)은 청어 젓갈 만드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청어를 물에 씻게 되면 사용할 수 없으므로 가져온 그대로 천으로 닦는다. 깨끗하고 수분이 없는 항아리에 청어 100마리마다 소금 3.2kg을 넣는다.”

조선 왕실의 의사였던 유중림(柳重臨, 1705~1771)은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라는 책에서 한문으로 청어 젓갈 제조법을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대바구니에 청어를 한 켜 깔고 소금을 뿌리고 그 위에 다시 청어를 한 켜 깔고 소금을 뿌린 다음 볏짚으로 만든 거적때기를 덮어 하룻밤이 지나면 청어의 즙이 아래로 모두 빠진다. 이 청어를 항아리에 넣고 다시 소금을 켜켜이 뿌린다. 6개월 후에 먹을 수 있고, 다음 해에 먹어도 맛이 좋다.”

《음식디미방》의 요리법으로 청어 젓갈을 만들면 스웨덴의 절인 청어 surströmming처럼 냄새가 지독하다. 그러나 소고기를 먹기 어려웠던 당시 사람들에게 청어 젓갈은 단백질과 지방을 고루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이었다.

소금과 곡물 밥의 지혜, 식해

‘식해’라는 젓갈도 있다. ‘식해’의 한자는 먹는다는 뜻의 ‘식’과 소금에 절인다는 뜻의 ‘해’로 구성된다. 조선 후기 만물 박사 이규경(1788~1856)은 당시 어촌 사람들이 웅어·밴댕이·새우·오징어·문어·낙지·꼴뚜기·조개·홍합·가자미·북어·정어리 등의 생선으로 식해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가자미 식해 (이미지 출처 : UTO Image)

식해를 만들려면 먼저 ‘누룩밥’을 만들어야 한다. 누룩밥은 멥쌀로 지은 밥에 많은 양의 엿기름, 보리나 밀의 속껍질로 만든 누룩의 가루, 그리고 물을 섞어 며칠 동안 숙성한다. 생선은 물기를 제거하고 꾸덕꾸덕 말린 다음 잘게 썰어 약간의 소금을 뿌리고 버무린다. 소금에 절인 생선 조각을 누룩밥에 넣고 약 10일 정도 숙성시키면 식해가 완성된다. 강원도의 삼척과 강릉 일대 사람들은 가자미와 메좁쌀로 ‘가자미식해’를 만든다.

배추김치를 담글 때 빠지지 않는 부재료이다. 18~19세기가 되면 서울의 부유층 가정에서는 서해에서 많이 잡은 새우로 담근 새우젓을 배추김치 담글 때 반드시 넣었다. 새우젓은 김치에 고기의 단백질과 지방의 맛을 더해주었다. 20세기 이후 남해에서 잡히는 멸치의 양이 많아지자 소금에 절인 멸치젓을 김치 담글 때 부재료로 넣었다. 젓갈이 들어간 김치에는 생선의 비린내가 났고, 이 냄새를 줄이기 위해 고춧가루·마늘·생강 등이 더욱 많이 들어갔다. 젓갈은 유럽과 북미의 피클(pickle), 중국의 파오차이(pao cai), 일본의 츠케모노(tsukemono)와 전혀 다른 맛의 김치를 탄생시켰다.

홍어의 요소가 만드는 삭힌 맛

소금에 절이지 않는데도 삭힌 맛을 내서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생선은 홍어다. 15세기 서해의 흑산도 어부들은 근처의 바다에서 홍어를 많이 잡았다. 그들은 실온에 그냥 둔 홍어에서 독한 암모니아 냄새가 나 부패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홍어를 그냥 버리기 아까워 먹은 사람들은 배탈도 나지 않으면서 삭힌 맛이 매우 좋음을 알았다. 이 소문이 퍼지면서 전라남도 사람들은 삭힌 홍어를 맛있는 음식으로 여겼다.

홍어는 뼈가 연한 생선이다. 80~100m 깊이의 바다에서 바닥을 유영하는 홍어는 삼투압을 조절하기 위한 물질로 요소(urea)를 다량으로 함유하고 있다. 살아 있는 홍어는 피부를 통해 요소를 몸 밖으로 배출한다. 그러나 죽은 홍어의 피부에는 요소가 가득 차 있다. 요소는 분해되어 암모니아로 변한다. 좋은 조건에서 숙성된 홍어의 암모니아는 부패 미생물을 제거하고 고기를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홍어는 한동안 실온에 두어도 부패하지 않지만 암모니아 냄새는 더욱 강해져서 이것을 처음 먹는 사람들은 부패했다고 판단하고 먹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홍어회 (이미지 출처 : UTO Image)

보관 기술의 발달로 젓갈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때에도 삭힌 홍어회는 날로 인기가 좋았고, 값이 올랐다. 홍어회를 판매하는 음식점에서는 홍어회에 돼지 수육과 묵힌 배추김치를 곁들인 ‘홍어삼합’이란 메뉴를 내놓았다. 전라남도 농촌 사람들이 서울로 이주하면서 서울에도 홍어삼합 전문 음식점이 생겼다. 1990년대 이후 홍어삼합은 국민 음식(national food)이 되었다.

발효와 부패는 과학의 전문 용어만은 아니다. 어떤 공동체 사람들은 발효한 음식이라고 알고 즐겨 먹지만, 다른 공동체 사람들은 그것을 부패했다고 판단하고 멀리한다. 따라서 어떤 음식을 두고 사람들이 발효와 부패를 가르는 기준에는 한 공동체가 공유하는 문화가 있다. 부패가 아니라, 발효되어 잘 삭힌 맛이라는 판단에는 같은 공동체 사람들이 함께한 경험이 담겨 있다. 삭힌 맛의 젓갈과 식해, 그리고 홍어회는 한국인에게는 ‘생각하기에 좋은(good to think)’ 음식이다.


Text by 주영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관장
Photos by 유토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