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로 조선 4대 고궁의 문은 닫히고,
계속되던 야간관람과 야간행사도
잠시 멈춰 있습니다.
못 보니까 더 아쉬운 고궁의 밤,
이제서야 소중함을 느끼게 됩니다.
조만간 다시 만날 거예요.
그때까지 잊지 마시라고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창경궁의
아름다운 밤을 공개합니다.
다시 만나면 더 아껴주세요.
우리 고궁의 밤을.
덕수궁
덕수궁 德壽宮 사적 제124호
덕수궁은 원래 조선 제9대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사저로, 임진왜란 이후 선조의 임시 거처로 사용되었습니다. 뒤를 이은 광해군이 1611년(광해 3년)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던 이곳 에 '경운궁(慶運宮)'이라는 정식 궁호를 붙여 주었습니다. 이후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 포하면서 역사적인 장소로 부각된 덕수궁은 순종이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고종의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덕수궁이라는 이름을 올렸습니다.
덕수궁 안에는 다른 궁궐에서는 볼 수 없는 석조전각인 석조전을 비롯한 서양식 건축물들이 남아있어 전통과 근대의 만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한문의 원래 이름은 대안문으로 '크게 편안하다'는 뜻인데 1906년 수리와 함께 대한문(大漢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대한(大漢)'은 '한양이 창대해진다'는 뜻이다.
중화전은 경운궁의 정전(법전)으로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등 중요한 국가적 의식을 치르던 곳이다.
석조전은 고종황제가 침전 겸 편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1900년부터 1910년에 걸쳐 지은 서양식 석조건물이다. 경운궁에 서양식 건축물들을 건립한 것은 대한제국 근대화를 위한 정책의 일환이었다. 석조전은 서양의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졌으며, 건물의 앞과 동서 양면에 베란다가 설치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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